15세에 실리콘밸리로 건너가 유니콘 회사를 만든 창업자의 이야기를 행사장에서 직접 듣고 왔습니다. 127분 녹음에서 비개발자 1인 기업가에게 진짜 필요한 것만 추렸어요.
이번에 다녀온 행사의 게스트는 좀 특이한 이력의 창업자였습니다. 미국 테네시 시골에서 홈스쿨링을 하던 14살 소년이 심심해서 만든 웹 게임 하나로 해커뉴스(개발자들의 큰 커뮤니티) 1위에 올랐고, 1년 뒤 실리콘밸리 회사가 그를 데려갔어요. 15살에요. 지금은 기업가치 1조 원대 게임 회사의 공동창업자고, 12년째 서울에 살고 있습니다.
두 시간 넘는 대담을 직접 녹음해서 전부 다시 들었습니다. 그중 코딩과 상관없이, 혼자 무언가를 만들어가는 모든 사람에게 적용되는 다섯 가지를 골랐어요.
그의 인생을 바꾼 건 거창한 계획이 아니라 10일짜리 사이드 프로젝트 하나였습니다. 공모전에선 떨어졌는데, 트위터에 점수 공유 기능을 넣은 덕에 입소문이 났고, 그걸 본 회사가 1년 뒤 연락을 해온 거죠. 그가 행사 마지막에 남긴 당부가 이겁니다.
듣는 걸로는 부족합니다. 만들어야 하고, 그다음엔 그걸 공유해야 해요.
— Teddy Cross, Playco 공동창업자재미있는 건, 바로 전날 다른 자리에서 만난 사업가 선배가 똑같은 구조의 말을 했다는 거예요 — "운은 복권이다, 안 사면 0%". 만들고 공유하는 행위 하나하나가 복권 구매라면, 공유하지 않은 결과물은 사지 않은 복권입니다. 이틀 연속, 전혀 다른 두 사람에게서 같은 결론을 들었습니다.
행사 후 참석자 토론에서 가장 많이 나온 합의이기도 합니다. 어떤 AI를 쓰느냐는 점점 덜 중요해지고, 자료를 어떻게 준비하고 → 어떤 순서로 시키고 → 어떻게 검사하는지의 설계가 결과를 가릅니다. 한 참석자의 비유가 압권이었어요.
하네스가 뭔지 아세요? 개 목줄이에요. AI는 동물 같아서 원하는 대로 잘 안 오는데, 줄을 채워서 원하는 곳으로 다가오게 만드는 겁니다.
— 행사 참석자 토론 중똑똑한 개를 사는 게 아니라 좋은 목줄을 만드는 일 — AI에게 일을 시키는 것의 본질이 이 한 줄에 담겨 있습니다.
그의 회사는 AI 사용에 한도를 두지 않습니다. 직원마다 법인 가상카드를 줘서 구독이든 사용량이든 "AI를 쓸까 말까 고민하는 마찰 자체"를 없앴대요. 그리고 한 가지 습관을 강조했습니다 — 매주 새 모델을 기존 업무 전부에 테스트해보는 것. 그래야 "충분히 좋아진 순간"을 놓치지 않고 갈아탈 수 있다고요. 실제로 그 회사 디자인팀은 산출량이 몇 배가 됐고, 이제 마케터와 디자이너까지 자기가 쓸 도구를 직접 만든다고 합니다.
의외였던 건, AI에 가장 진심인 이 사람이 글만큼은 AI에게 안 맡긴다는 것이었습니다.
진정성이 왕입니다. AI가 당신 대신 말하는 순간, 진정성은 완전히 파괴돼요.
— Teddy Cross제작·운영·정리는 AI에게 맡기되, 내 목소리로 말하는 글은 직접 쓴다 — 혼자 브랜드를 만들어가는 사람에게 이건 취향 문제가 아니라 생존 전략입니다. 독자가 결국 사는 건 정보가 아니라 사람이니까요.
"온라인에서 만난 사람들과의 신뢰를 어떻게 유지하느냐"는 청중 질문에, 그는 웃으며 이렇게 답했습니다.
이 답을 싫어하실 텐데 — 온라인에서 연결되는 최고의 방법은, 오프라인에서 만나는 겁니다. AI는 아직 오프라인엔 없잖아요. 그게 우리에게 남은 전부예요.
— Teddy CrossAI가 글도 쓰고 그림도 그리고 영상도 만드는 시대에, 기계가 흉내 낼 수 없는 마지막 영역이 같은 공간에서 마주 앉는 일이라는 역설. 실제로 그는 올해만 3개월을 해외에서 보내며 사람들을 직접 만나러 다닌다고 합니다. 행사장에서 이 말을 들으며 — 온라인으로 다 되는 것 같아도, 결국 모임에 나온 사람들끼리 뭔가가 시작되는 걸 여러 번 본 입장에서 — 깊이 공감했습니다.
실리콘밸리 채용 얘기 중 한 대목이 비개발자에게 오히려 희소식이라 덧붙입니다. 코딩 시험은 사라지는 중이고, 평가 기준은 "무엇을 만들어봤나"와 감각(테이스트)으로 옮겨가고 있대요. 그리고 한마디 — "이제 AI로 웹사이트 만드는 데 5분이면 되는데, 포트폴리오가 없다는 건 변명의 여지가 없어요(zero excuse)." 코딩 실력이 아니라 만든 것의 목록이 이력서가 되는 시대 — 콘텐츠 만들던 사람, 기획하던 사람에게 유리해지는 변화입니다.
만들고, 공유하라 — 공유하지 않은 결과물은 사지 않은 복권이다.
경쟁력은 어떤 AI를 쓰느냐가 아니라 일의 순서를 설계하는 데서 난다. AI는 동물이고, 필요한 건 좋은 목줄이다.
제작은 AI에게, 목소리는 나에게 — 진정성이 1인 브랜드의 마지막 해자다.
그리고 AI가 모든 걸 해주는 시대의 역설: 진짜 연결은 여전히, 오프라인에서 시작된다.